<주간 뉴스타파> 윤석열의 '마이웨이'와 기자들의 '셀프 입틀막'

2024년 05월 09일 20시 00분

뉴스타파는 본래 탐사보도 매체로서 그날 그날 벌어진 현안들을 곧바로 보도하는 매체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번 주 주간 뉴스타파는 특별히, 오늘 오전에 있었던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 대해 평가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총선 이후 사실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국민 앞에 입장을 밝히는 자리인만큼 앞으로의 3년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수 있는 중요한 이벤트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권력자들에게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지지 못하는 한국 언론의 고질적인 문제 역시 다시 한 번 짚어봤습니다.

'수박 겉핥기 기자회견'의 구조적 이유

우선 기자회견의 내용을 지적하기 전에 기자회견 자체가 너무 적다는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한 지 1년 9개월 만인 오늘 취임 2주년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2년 동안 두 번 기자회견을 했으니 연평균 1회의 기자회견을 한 것이죠.
윤석열 대통령이 좋아하는 미국과 비교를 해볼까요? 바이든 대통령은 연로한 나이 때문인지 말 실수가 잦아 기자회견을 적게 하는 편입니다. 그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후 2년간 연평균 10회의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트럼프는 연평균 19.5회, 오바마는 23회, 클린턴 전 대통령은 무려 41.5회를 했습니다. 
한국의 대통령 중에서는 김대중과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이 가장 많은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재임 기간 중 150회가 넘습니다.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대통령은 이보다 훨씬 적은 기자회견을 했지만 그래도 윤석열 대통령만큼 적지는 않습니다.
기자회견을 하도 오랜만에 하다 보니 제한된 시간 안에 국정의 모든 분야에 대한 질의응답을 주고받아야 합니다. 오늘 기자회견 역시 정치현안, 외교안보, 사회분야, 경제분야 4가지로 나누어서 진행됐습니다. 70분 정도밖에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모든 국정 분야에 대해 질의응답을 주고받다 보니, 질문들은 넓고 펑퍼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올해 2월 자신의 부통령 재임 시절 기밀 유출 사건에 대한 특검의 보고서가 나오자, 기자 회견을 자청해 이 이슈에 대해 집중적으로 질의를 받았던 것과 비교하면 '구조적'으로 수박 겉핥기식 기자회견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추가 질문이 없는 기자회견

오늘 기자회견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또 하나의 문제는 '추가 질문'이 없다는 것입니다. '추가 질문'이 없을 때 권력자는 불편한 질문을 무시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오늘 기자회견에서 한국일보 김현빈 기자는 채상병 특검법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질문의 요지는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특검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둘째는 대통령이 실제로 외압을 행사했는가였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장황하게 답변했지만 두 번째 질문은 무시했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대통령실의 입장은 이미 며칠 전에 나와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특검법은 '나쁜 정치'라는 입장입니다.) 따라서 오늘 기자회견에서의 답변은 동일한 취지의 답변을 대통령의 입을 통해 직접 들었다는 것 외에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정작 국민들이 궁금해할만한 질문은 두 번째 질문이었습니다. 바로 대통령이 직접적인 당사자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이 질문에 답변을 하지 않았습니다. 
시민들의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기자들은 추가 질문을 통해 물었어야 합니다. 왜 정작 중요한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답변을 하지 않느냐고 말이죠. 그러나 대통령의 답변이 끝나고 난 뒤 다음 질문자로 지목된 KBS 장덕수 기자는 대통령의 미진한 답변에 대한 추궁 대신 "협치 강화를 위한  실질적 방안"에 대해 물었습니다. 대통령으로서는 가장 불편한 질문을 자연스럽게 피해간 모양새입니다. 
미국에서는 어떨까요. 앞에서 언급한 바이든 대통령의 특검 관련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집요하게 추가 질문을 던졌습니다. 
기자 : 바이든 대통령님, 특검이 보고서에서 대통령님이 기소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대통령님이 “선의가 있지만 기억력이 좋지 않은 노인”이기 때문이라고 적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 : 저는 선의가 있고, 노인이고, 제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대통령입니다. 이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의 권고는 필요 없어요. 그건 완전히..

기자 : 기억력이 얼마나 좋지 않으신가요? 대통령직을 계속 수행할 수 있는 상태인가요?

바이든 대통령 : 제 기억력이 너무 나빠서 당신이 질문하도록 놔뒀군요.

기자 : 대통령님, 기억력이 나빠졌다고 느끼십니까?

바이든 대통령 : 제 기억력은 나빠진 게 아니라 멀쩡합니다. 제가 대통령이 된 이후 한 일을 보세요. 제가 통과시킨 법안들 모두 실제 통과될 수 있을 거라 생각 안 하셨을 겁니다. 근데 어떻게 통과 됐나요?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잊어버렸나 보죠.

기자 :  대통령님,  유권자들이 대통령님의 나이에 대해 우려해야 하나요? 그들을 어떻게 안심시킬 건지요? 그리고 보고서 내용이 당신의 나이에 대한 그들의 우려를 더욱 부추길까봐 걱정되시나요?

바이든 대통령:  일부의 의견입니다.

기자  : 대통령님, 당신은 오늘 형사적 책임에서 벗어났지만 최소한 기밀 자료를 부주의하게 취급한 것에 대한 책임을 느끼십니까?

바이든 대통령 :  저는 직원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보지 못한 것에 대해 책임을 집니다. 제 차고와 집에서 나온 물건, 옮겨진 물건은 제가 아니라 제 직원이 옮긴 것입니다. 그리고..

기자 :  대통령님, 왜 대필 작가와 기밀 정보를 공유하셨습니까? 대통령님, 몇 달 동안 나이를 물으면 “지켜보라”라는 말로 대답하셨죠.

바이든 대통령 :  지켜보세요.

기자 :  많은 미국인들이 지켜보면서 대통령님의 나이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 :  그것은 당신의 판단입니다.

기자 :  이것은 여론 조사에 따른 것입니다. 그들은 우려를 표명합니다.

바이든 대통령 :  언론 전반이 가진 우려가 아닙니다.

기자 :  국민들은 당신의 정신력에 대해 우려합니다. 당신이 너무 늙었다고 말합니다. 대통령님, 12월 (대선에서) 트럼프를 이길 수 있는 다른 민주당원들도 많다고 생각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들이 아니라 당신이 재선에 나서야 합니까?

바이든 대통령 : 제가 이 나라에서 미국 대통령이 되어 제가 시작한 일을 마무리할 수 있는 가장 자격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바이든 대통령 기자회견 중 (2024.2.9)
오늘 기자회견에서도 외신 기자들은 국내 기자들과 다른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AFP 기자가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질문을 했고 윤석열 대통령이 이에 답변을 했는데, 이어서 질문권을 받은 BBC 기자가 미진한 답변이라고 판단했는지 추가 질문을 던졌고 이어서 자신이 준비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윤석열의 '마이웨이'와 김건희 방탄

오늘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총선 패배의 원인을 묻는 질문에, "제 국정운영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가 많이 부족했다는 게 담긴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미흡하고 부족한 게 뭐였는지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꺼낸 단어는 '민생'이었습니다. 노력했지만 국민들이 체감하는 변화가 부족했고, 정부 정책을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소통하는 게 부족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총선 패배의 원인을 '민생', 즉 경제 문제 한 가지로 환원한 프레임 전환일 뿐입니다. 많은 언론들이 총선 패배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는 '사법적 내로남불' 즉 자신과 가족 및 측근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비판 언론과 정적에 대해서는 검찰을 이용해 끝까지 추적해 죽이려고 드는 행태도, 검찰 공화국에 대한 문제 제기도, 오만과 불통에 대한 국민적 불만도 모두 '민생' 한 가지로 퉁친 것이죠. 그러면서 윤석열 대통령은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시장경제와 민간주도 시스템으로 경제 기조를 잡는 것은 일관성을 유지하겠다"고. 이 정도면 '눈가리고 아웅'이 아니라 '눈도 가리지 않은 채 아웅'이라고 평가할 만합니다. 
김건희 여사와 관련된 의혹에 대해서는 두 가지 질문이 나왔습니다.
첫 번째는 명품백 수수 의혹입니다. 이에 대한 대통령의 답변은 이미 며칠 전부터 여러 언론이 예상한 것과 한치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사과를 드린다. 하지만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므로 언급 않겠다" 예상과 너무 똑같아 식상합니다.
두 번째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연루 의혹 등에 대한 김건희 특검법안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2년 반 동안 탈탈 털었으므로 봐주기 수사가 아니다. 특검은 봐주기 수사가 의심될 때 하는 것이므로 특검법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
이 답변은 사실 이미 1년 전부터 국민의힘 측에서 수차례 반복적으로 내놨던 답변입니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이런 주장을 내놓은 이후  뉴스타파 보도로 새로운 사실들이 많이 밝혀졌습니다. 대표적인 게 윤석열 대통령의 해명과 달리 김건희 여사 모녀가 도이치모터스 주식 거래로 23억 원을 벌어들였다는 검찰의 의견서입니다. 김건희 여사와 증권사 직원과의 통화 녹취록도 공개됐습니다. 그래서인지 더 이상 국민의힘도 이런 논리를 반복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이미 폐기된 답변을 대통령 입으로 다시 말하게 한 부분에 대해서는 대통령실 대변인이 문책을 받아야 할 정도의 '사고'입니다. 
기자들은 이같은 구체적인 사실 관계를 들어 대통령의 '오래된 변명'에 대해 추가 질의를 했어야 했습니다. 법적인 책임 이전에 대통령의 거짓말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물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기자들이 묻지 않은 것 ① 정치검찰과 민정수석, 그리고 특활비

기자회견에서는 채상병 특검법안과 김건희 특검법 외에 다른 국정 분야에 대한 여러 질문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질문은 펑퍼짐했고 답변은 구체적이지 않았습니다. 미안한 얘기지만 하나마나한 얘기들뿐이었습니다. 
이런 하나마나한 질문 대신 기자들이 물었어야 했던 것은 무엇일까요. 
우선 '검찰 공화국'에 대한 시민들의 걱정과 문제 제기가 빠졌습니다. 검사 출신인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이후 검찰이 국정 전면에 나서고 검사 출신들이 요직에 중용되는 것에 대한 시민들의 우려가 큽니다. 검찰은 극도로 정치화됐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은 누구도 더 이상 입에 올리지 않는 '공자님 말씀'이 되어버렸습니다. 더구나 바로 며칠 전 윤석열 대통령이 민정수석실을 신설하고 검사 출신의 민정 수석을 임명한 상황입니다. 당연히 민정수석실 신설과 검사 출신 민정수석 임명이 임기 후반 대통령 본인과 가족에 대한 사법 리스크에 대비해 검찰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기 위한 것은 아닌지 물었어야 합니다. 
뉴스타파가 지속적으로 보도하고 있는 검찰 특활비에 대한 질문이 빠진 것도 아쉽습니다. 특활비는 여전히 남아있는 '검사 동일체' 관행의 물적 토대이자 뿌리입니다. 더군다나 윤석열 대통령 본인 역시 검찰 총장 시절 특활비를 오남용했다는 증거들이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본인에게 묻지 않으면 제대로 된 답을 듣기 어려운 문제라는 뜻입니다. 

기자들이 묻지 않은 것 ② 언론장악과 비판언론 탄압

국경없는 기자회가 매년 발표하는 언론 자유 지수에서 한국은 62위를 기록했습니다. 지난해 47위였던 것이 1년 사이 15단계나 떨어졌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언론 장악과 비판언론 탄압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기자들이 이에 대한 질문을 하나도 하지 않은 것 역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민주주의의 기본 요건인 언론 자유가 극심하게 탄압받고 있는 상황에서, 누구보다 앞장서 언론 자유를 지키자고 나서야 할 기자들이 대통령 기자회견이라는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것은 충격적입니다. 
얼마 전 열린 영수회담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언론을 장악할 방법은 잘 알고 있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러면서 "언론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안들에 대해 잘 모른다"고도 말했다고 합니다. 오늘 기자회견은 윤석열 대통령이 정말 그런 말을 했는지, 정말 언론계 현안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는지, 그렇다면 대체 왜 전방위적인 언론 탄압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직접 물어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관련 질문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늘 '질문을 허락받은' 국내 언론사는 16곳입니다. 한겨레를 제외하면 모두 중도 또는 보수 성향의 언론사였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유일하게 추가 질문이 있었던 사안은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관계를 묻는 질문이었습니다. 질문을 한 기자들에게는 한국 사회의 언론 자유 전체가 퇴보하는 것보다 차기 보수진영 대권 주자의 향방이 어디를 향할 것인지가 훨씬 중요한 것이었나 봅니다. 
자세한 내용은 영상을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제작진
취재임선응 김지윤
촬영정형민 김기철 신영철 오준식 김희주
편집장주영
CG정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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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허현재